[성수]서울 속 브루클린 바이브 <퇴근길 여행 한 컵>

에디터 진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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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 Hosting House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일하는 순간은 언제나 오버 페이스다. 특히나 사회초년생들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무리해서 달리고, 자주 넘어진다. 평가의 중심을 내 쪽으로 끌어당길 순 없을까. 판타지 같지만 뉴욕은 그런 도시다. 모두가 인정받진 못하지만 적어도 새로운 꿈을 응원받을 수 있는 곳.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 자신만의 개성이 없으면 오히려 성공하기 어렵다는 뉴욕으로 떠났다. 아. 비행기 타는 미국은 아니고, 성수동에 있는 브루클린을 만나러

*부자가 되고 싶어에서 이어집니다.


평소보다 몸이 무거운 아침, 혹시나 밖을 보니 역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걱정이 시작된다. 취재 나가야 하는데 카페에 빛이 안 들면, 실내사진이 어둡게 나오면 어떡하지. 잘하고 싶다는 욕심과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머리를 꽉 채웠고 무거운 몸에 힘까지 들어갔다. 왜 항상 준비할수록 부족한 것 같고, 왜 시간이 있을 때 더 꼼꼼히 확인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이번엔 뉴욕이다. 쌀쌀한 가을 날씨도, 자동차 정비회사와 새로 오픈한 듯한 식당이 번갈아 늘어선 성수동도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평소보다 운치 있게 느껴졌다. 빗길을 건너자 서울 속 뉴욕을 테마로 한 복합공간, Hosting House의 안내판이 보였다.


비가 내려 갈 수 없었던 루프탑. 평소 모습은 이렇게 도심 정원에 가깝다


Hosting House는 공간 구성이 독특한데, 2층을 올라가면 왼쪽은 인테리어 쇼룸&숍, 오른쪽은 카페&바, 옥상은 루프탑 정원이다. 한 단어로 정의하기 힘든 뉴욕의 분위기를 서로 다른 관점으로 각 공간에 재현한 것이다. 뉴욕 아파트를 테마로 한 쇼룸부터 둘러봤다.

  

2층 쇼룸&숍 전경.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을 그대로 옮겨온 듯 하다


거실. 르코르비쥐에 암체어, 장호석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가 협업한 비아인키노의 가구가 함께 놓여 있다


부엌. 은은한 톤의 테이블웨어가 조화롭다


화장실. 화이트 톤에 빈티지한 조명과 대리석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특히 국내 친환경 비건 뷰티 브랜드인 파이콜로지(phykology)와 협업에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뉴욕 기반의 향수 브랜드 르 라보(Le Labo)의 퍼스널 케어 제품군이 눈에 띈다

서재. 문구 브랜드는 더 유심히 둘러보게 된다. 그 중 PUEBCO는 인도에서 수제 빈티지 소품을 생산하는 일본 브랜드로, 결국 내가 Glasses Case를 구매하게 만들었다


약 20평 규모의 쇼룸은 거실, 서재, 욕실, 주방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벽과 문이 없어 탁 트인 느낌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브랜드를 모아 진열했음에도 맨해튼에 거주하는 디자이너의 아파트를 그대로 들어내 옮긴 듯 통일감이 있다. 취향이 선명하고 자신의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뉴요커가 걸어와 소파에 앉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5년, 10년 후 나도 저기에 앉게 될까, 상상하게 된다.



반면 맞은편 카페&바는 아늑했다. 문을 여니 공간 전체에 차분히 깔린 카키와 올리브 컬러가 눈에 들어왔고, 귀로는 편안한 멜로디의 재즈힙합이 들려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날 것의 느낌이 나는 것까지 브루클린과 비슷했다.

이렇게 일관성 있는 공간 분위기는 카페&바를 전담하는 김석진 대표의 영향인 듯하다. 뉴욕에 살던 시절, 그는 파트타임 바텐더로 학비를 충당하고, 거기에 인턴과 운동까지 병행하며 부단한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표정만은 시종일관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밀어붙이는, 내가 찾던 뉴욕의 허슬(hustle)이 그에겐 과거의 일이라는 듯.

  

김석진 대표가 촬영한 링컨 센터 뒷편의 풍경. 그래 이런 걸 상상했었는데 ⓒHosting House


한번 더 물었다. 뉴욕의 ‘개성 있는 브랜드’는 어디라고 생각하냐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남는 비결 한 조각을 듣고 싶었다. 돌아온 대답은 아메리칸 클래식의 이미지를 만든 랄프 로렌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순간, 카페로 파프리카 박스 하나가 배달됐다. 택배를 건네받은 그는 생업이라며 평소에 이렇게 지낸다고 웃었다. 반복되는 일과를 편안하게 받아들인 사람처럼. 그 미소에는 어떤 고단함이나 자조가 아닌 자연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샹들리에와 에스프레소 머신, 올리브색 가구와 타일 바닥이 함께 어울려있다 기획 단계부터 카페&바의 조화를 구상한 흔적이 엿보인다


“비 오는 날 그냥 멍하니 있으면 좋지 않으세요?”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무엇이든 배우려고 기를 쓰던 나에게 그가 던진 말이었다. 턱을 괴고 살짝 열어둔 창문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걸 보며 가만히 있는 것. 평소에는 누리지 못하는 호사다. 누가 말린 것도 아닌데,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때부터 정말 멍하니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봤다

하지만 역시 쉬고 있으니까 불안해진다

취재하러 와서 이렇게 쉬어도 되나

다시 노트에 머리를 박고 원고를 정리했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들면 예쁜 조명이 보인다

‘아니 그래도 이러면 안 되지!’ 또 정신을 차린다

그런데 노트에 펜을 갖다 대봐도 글이 잘 안 써진다

다시 고개를 들면 오른편에 싱그러운 나무가 보이고 편안한 재즈음악이 들린다



그렇게 갈팡질팡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통해 즐겁게 성장하겠다’는 다짐에서 ‘즐겁게’는 어디로 가버리고 살기 위한 발버둥만 남아있던 건 아닐까. 일상을 조화롭게 운영하고 싶다. 일을 잘 해내는 것, 일의 과정을 즐기는 것, 가능하면 체력에 약간의 여유를 남기는 것까지.

어쩌면 이걸 다 해내고 싶은 것 역시 초년생 특유의 과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지나가듯 건넨 한마디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 지금껏 내가 어떤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는지 알려준 것만은 확실하다.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것을 잡으려 선택했던 망원렌즈를 광각렌즈로 바꿔 끼우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한번 찾아온 손님들이 다음에도 편하게 방문하길 바라는 공간의 표정은 어떤지도 알게 됐다. 개성은 악을 쓰고 찾아헤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분위기를 전달하는 일이 아닐까. 2018년이 두 달 남짓 남은 지금 나는 어떤 리듬으로 일하고 있는 걸까.

  

한국의 브루클린이라 불리는 성수동의 지역 특색을 살려 벽에는 페인트칠조차 하지 않았다고. 장인정신과 기술력에 대한 존중을 인테리어로 드러냈다


평소보다 개운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피로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괜찮다.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중이니까. 다음 여행은 조금 더 가벼운 몸으로 출발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계에 압도되지 않은 주인이 자신의 취향과 리듬을 듬뿍 담은 서점으로(다음편에 계속).


INFORMATION

02-2039-6606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7길 1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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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진성훈
sh.jin@gongshall.com
사진제공 Hosting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