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을지로 속 보랏빛 섬 <서울라이트>

에디터 진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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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 메이커의 실험실



서울은 유행이 빠르고, 어딜 가도 북적이며, 24시간 번쩍거리는 도시다. 뉴요커, 파리지앵처럼 서울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 ‘서울라이트(Seoulite)’는 이 모든 특징을 껴안으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낸다. 뜨거운 7월마저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마력을 가지고서.




을지로의 여느 카페가 그렇듯 서울라이트의 외부와 내부는 사뭇 대조적이다. 카페 입구에 있어야 할 간판은 철문에 붙인 A4 용지 한 장으로 대신한 반면, 문을 열면 내부를 가득 메운 보랏빛 조명이 ‘이곳은 다른 세계’임을 알린다. 짙은 보라색에 핑크색을 섞은 듯한 네온 조명과 에메랄드 색 창문을 통과한 햇빛이 오묘하게 섞여 서울라이트만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보라색 조명을 받으니 흔히 보이는 초록빛 식물도 이국적이다.




색 조합으로 공간을 차별화한 감각은 메뉴에도 적용된다. 하얀 생크림에 붉은 산딸기를 얹은 브라우니는 눈으로 보기에도 상큼하다. 흔히 볼 수 있는 청포도 에이드는 위에서부터 오렌지색, 보라색과 초록색을 3단으로 쌓아 층마다 다른 색을 냈다. 이색적인 조합은 또 있다. 서울라이트는 낮에는 카페로, 밤에는 와인바로 운영되는데, 독특하게도 떡볶이를 와인과 함께 내놓는다. 양은냄비에 국물 치즈 떡볶이를 서빙해 가장 대중적인 분식 메뉴와 비교적 덜 익숙한 주류를 조합한 것이다.



인테리어 역시 범상치 않다. 천장에는 매트리스 스프링을 달고, 거울에는 추천 메뉴를 적었다. 테이블에는 동으로 만든 빈티지 조명과 꽃무늬가 그려진 흰색 천을 깔아 예스러운 느낌을 줬다. 흔치 않은 아이템을 사용하고 조합해 격식을 깬, 그야말로 파격이다. 누군가는 ‘혼종’이라고 부르겠지만, 누군가에겐 자신의 마이너한 감성을 속속들이 충족시켜줄 새로움이다.



“부다페스트의 ‘루인 펍(Ruin Pub)’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서울라이트 이호련 대표의 말이다. 마치 폐허가 된 듯 쇠락한 도심을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루인 펍은, 제조업 위주의 을지로가 힘을 잃었다가 다시 주목받는 현상과 겹쳐진다. 서울라이트의 벽에는 세운상가, 서울역 등 도시의 변화를 보여주는 서울 곳곳의 사진이 붙어있다. 서울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을지로의 재개발은 그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서울라이트 역시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구도심의 모습을 함께 기억하고 싶다”는 이 대표의 의지가 재개발의 흐름을 거스를 정도로 강할 수는 없겠지만, 전에 없던 개성을 만들고 찾기 불편한 공간에 사람들을 모을 만큼은 유효하다.

INFORMATION
서울 중구 을지로11길 28 3층
instagram.com/seoulite_cafe
치츠 국물떡볶이(12.0), 생크림 산딸기 브라우니(5.0), 청포도에이드(7.0)




에디터, 사진 진성훈
sh.jin@gongsh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