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장인과 힙스터의 첫만남

에디터 진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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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 메이커의 실험실




2019년의 을지로는 ‘힙지로’라고 불린다. 40년 된 노포 ‘을지 OB 베어’에서 20대가 맥주를 마시고, 세운상가 루프탑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진풍경이 연출될 정도로 을지로가 힙한 탓이다. 제조업 중심의 오래된 동네였던 을지로는, ‘손으로 만든다’는 메이커 문화를 가진 놀이공간으로서 밀레니얼에게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을지로는 전통적인 제조 공업단지다. 오죽하면 “청계상가 한 바퀴를 돌면 탱크, 로켓도 만든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실제로 청계 세운상가 내부 상점에는 금속 막대와 전자기판, 볼트 등 각종 부품이 빼곡히 쌓여있어 작은 공간 하나하나가 꽉 찬 느낌을 준다. 서울시가 고물상 지역이었던 청계천 일대를 세운상가로 발전시킨 이후(1967-1972년), 세운상가는 가전제품과 컴퓨터에 특화된 상가로써 한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입지를 굳혀왔다.


세운상가뿐만 아니라 을지로 3가 골목에는 조명상가, 인쇄소, 금속 공업사 등 다양한 산업군이 밀집해 있다. 이들은 단순히 모여있는 데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자재의 판매, 유통, 가공, 제조가 연결된 네트워크로 기능한다.


철물점에 가면 어떤 소재의 금속이 튼튼하고 수명이 긴지 알려주고,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드는 사람에겐 원하는 색감을 낼 수 있는 종이를 추천해 옆집 인쇄소에서 바로 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식이다. 이렇게 상가들이 몰린 곳에서 오랜 시간 쌓아온 무형의 자산은 개인 창작자부터 정부 단체까지 다양한 고객을 아우르며 특유의 메이커 문화를 정립했다.


하지만 2000년대 전후로 공업이 자동화되고 유통업이 온라인으로 흡수되면서 을지로 상권은 점차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이후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놓고 철거와 복원 사업을 반복하다 2014년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다시 세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을지로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을지로를 지금의 ‘힙지로’로 만든 사람들은 젊은 예술가와 새로운 공간을 찾아나선 청년이다. 3, 4년 전의 을지로는 임대료가 시세의 삼분의 일 정도로 저렴했고, 권리금도 없­다시피 했다. 서울 중심권에 위치한 데다 지하철 2호선이 가깝다는 점, 공업 단지로 사용되어 넓다는 점 역시 돈 없고 아이디어 많은 젊은층을 불러모으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을지로의 유명한 공간을 조금 다녀본 사람들은 “‘여기에 카페가 있다고?’란 생각이 들면 제대로 찾아온 것”이라고 말한다. 여타의 뜨는 동네와 달리 을지로의 공간들은 이미 공업 상점들이 차지하고 있는 1층이 아닌 주로 3층이나 4층에 위치한다. 을지로 힙스터 붐을 전파한 ‘신도시’도, 가장 최근에 문을 열어 아시아 베이스의 문화를 녹여 낸 ‘애프터 저크 오프(After Jerk Off)’도 마찬가지다.


을지로에는 새로운 공간과 기존의 메이커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늘 새로운 것만 보고 달리던 서울의 모습과는 다른 양상을 구현해 낼 을지로가 기대되는 이유다.



에디터, 사진 진성훈
sh.jin@gongsh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