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캔버스 찢고 나온 히어로

에디터 진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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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이느은> 신창용, 이현진, 조문기




“TV 좀 그만 봐!” 스크린에 바짝 붙어 있는 아이에게 늘 따라붙는 잔소리다. 하지만 그 아이는 커서도 여전히 TV와 친구처럼 지낸다. 혹은 영화관 스크린이나, 게임 화면과도. 그리고 마침내 대중매체에 자신만의 관점을 덧입혀 작품을 창작하기에 이르렀다. 소위 ‘덕업일치’라는 말이 착 달라붙는 신창용, 이현진, 조문기 작가의 이야기다

 

1977년에서 1979년 사이에 태어난 신창용, 이현진, 조문기 작가는 좋아하는 일을 심화시켜 예술 작품으로, 그리고 그 작품 활동을 자신의 업으로 만든 첫 세대에 속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단체전 <태도가 형식이 될 때>에 3명의 작가가 함께 참여한 것 역시 단순히 그들이 동시대 작가라서가 아닌, 그들을 관통하는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작품에서 대중매체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작가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그 독창성이 시대와 조응한다는 미덕을 가진다. 의도했든 혹은 그렇지 않든 대중매체와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허물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틀을 부수는 예술이자, 대중에게 친근함을 주는 방식을 만든 셈이다.

물론 각자가 천착하는 주제와, 표현방식은 모두 다르다. 또 어떤 부분은 변화하기도 한다. 대중매체라는 일종의 집단경험을 그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3명의 작가를 함께 또 각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신창용 작가


신창용 작가는 슈퍼히어로 코믹스의 팬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건 세상을 구하는 영웅적인 순간이 아니라, 스파이더맨의 피자배달 같은 일상적인 순간이다. 할리우드 영화 배우의 파파라치 사진과 같은 모습을 그리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정교하게 설계된 스포트라이트가 없는, 준비되지 않은 환경에서만 보이는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117cmx72cm_acrylic on canvas_2016


대중은 모두가 동경하는 대상에게서 우리와 비슷한 행동 심지어 너절하기까지 한 모습을 발견할 때 그 평범함에 공감한다. 나와는 다른 존재로 규정하고 타자화하는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신창용 작가가 파악한 대중과 히어로의 관계다.

   

작가는 결국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선은 대중매체와 대중을 번갈아 바라보며 둘을 겹쳐놓는다. 때문에 그는 위압감이 들 만큼 큰 작품을 제작하지도 않고, 수집가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낼 만큼 비싼 가격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나는 기술04_117cmX91cm_acrylic on canvas_2015


신창용 작가의 작품을 즐기기 위해서 꼭 이소룡이나 커트 코베인에 대해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감상하거나, 누구를 그려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감상법일 수도 있다. 히어로 영화가 연이어 개봉하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지금, 그가 바라본 영웅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이현진 작가


이현진 작가는 1980년대 호황기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다. 그는 부드러운 움직임을 구현하는 3D 기법이 아닌, 이미지를 이어붙인 프레임 기반의 상상력이 더 흥미롭다고 말한다. 앞뒤가 맞지 않아보이는 프레임을 연결했을 때 나타나는 이미지가 있고, 이런 방법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메시지 혹은 감상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애니메이션 안에서도 표현기법을 구분하는 그는 관심있는 주제에 따라 자유롭게 매체를 선택한다. 예를 들어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테마로 잡을 때에는 회화를, 흘러가는 유동성을 표현할 때는 애니메이션을 선택하는 식이다.


_70cmx90cm_digital imgae_2017


매우 능력있는 보모_50cmX60cm_digital image_2013


그는 대중이 어떻게 작품을 받아들일지를 고민하고 표현방식을 선택하는 작가다. 처럼 유독 세밀한 선이 많이 그려진 작품도 어지럽지 않고, <매우 능력있는 보모>처럼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어도 고개 돌려 외면하지는 않게 되는 것은 모두 그의 세심한 배려 탓이다.

오늘날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 보는 매체가 아니라, 아이들이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대중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는 매체다. 아이러니하게도, 섬세함이야말로 무거운 철학이나 전복적인 문제의식도 부드럽게 전달되게 하는 방법일지 모른다. 마니아만의 갤러리 전시 문화가 아니라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겠다는 이현진 작가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유다.


 

조문기 작가


조문기 작가는 음악이나 만화 등 신화를 기반으로 한 2차 창작물에서 영감을 얻는다. 명화나 새로운 매체, 혹은 종교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도 그에겐 창작의 기반이 된다. 작가는 그 안에 담긴 인간의 탐욕과 갈등에 주목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신체 일부가 과장되거나 변형되어있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가는 이를 ‘부조리’라고 설명했다. <구심점>에 등장하는 기하학적 틀에 맞춰진 인체나 <그의 왼손>에 등장하는 아홉 개의 손가락 같은 시각적인 특징이 이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구심점_116.8cmⅹ91.0 cm_acrylic on canvas_2017


그의 왼손_72.7cm× 60.6cm_acrylic on canvas _2018


그는 부조리가 대개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한다. 가족이나 연인처럼 친밀한 관계일수록 균열의 간격도 크게 벌어지는 법이니까. 인류보편의 감정을 담고 있는 신화에서 테마를 끌어왔기에, 그의 작품은 단순히 ‘남의 일’로 치부하기 어려운 장면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상주와 함께_112.1 cmx193.9cm _oil and acrylic on canvas _2014


조문기 작가는 여기서 주제를 더 밀고 나아가, 자신과의 갈등에 부딪힌다. 갖은 수단을 동원해도 떼어낼 수 없는 가장 가까운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니까.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더 뚜렷해진 색깔을 들고 등장할 그의 다음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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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진성훈
영상 서은진
사진제공 신창용, 이현진, 조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