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단색화'는 단색이 아니다? 작가 김태호가 말하는 한국 단색화

GONG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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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태호



‘한국 단색화’의 가치와 위상을 세계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지난 5월, 프랑스에서 들려온 반가운 소식. 


파리 퐁피두 센터가 

한국 단색화 작품을

영구 소장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일을 계기로 

단색화가 세계 미술사의 맥락에서

활발히 논의될 가능성도 한층 더 높아졌다.


그리고 여기!

단색화의 큰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온 작가, 김태호가 있다.


물감을 수직과 수평으로 수없이 반복해 칠한 뒤,

그 층층을 다시 칼로 벗겨내는 지난한 과정.


목적 없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

비로소 김태호의 단색화가 탄생한다.


지난 50여 년간, 

작가는 자신에게 찾아온 작은 계기를 놓치지 않았다.

숱한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김태호 작가의 파주 작업실에서,

그가 만들어 온 길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본 인터뷰는 '윤기원의 아티스톡'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눌러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작가님! 작업실이 꼭 미술관 같아요. 이 공간에 온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한 2년 반 됐습니다. 원래는 여기가 공연장이었는데요. 제가 온 뒤로, 전시장 겸 작업실로 리모델링했지요.


-이 큰 공간이 오직 한 사람, 김태호만을 위한 공간이라니 멋집니다. 여기선 작가님의 초기 작품도 볼 수 있다고 하던데요.

네. 바로 이 작품들이죠. 옛날에, 그러니까 1970년대 초에는요. 일요일이면 셔터 내려진 은행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셔터가 특유의 패턴이 있잖아요. 모인 사람들 뒤로 그림자가 볼록볼록 드리우는데, 그게 아주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은행 셔터의 패턴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셔터의 볼륨감, 올록볼록한 패턴을 표현하기 위해선 에어브러시를 사용했고요. 

처음에는 인체를 직접적으로 그렸는데, 나중에는 인체의 구조를 추상적으로 그린 걸 볼 수 있어요.


-형태가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한 것뿐만 아니라, 색을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변화가 보여요!

맞습니다. 초반엔 주로 검은색으로 작업을 하다 조금씩 유색 작업으로 바뀌었는데, 그것도 계기가 있죠. 

크기가 큰 작업을 하려면 큰 캔버스, 큰 천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엔 제가 원하는 크기의 천은 안 나왔지요. 그래서 프랑스 갔을 때, 아사 천이라는 걸 사가지고 왔는데요. 그 천이 너무 고운 거예요. 이 고운 천의 색을 그대로 활용해보고 싶었어요. “흰 물감 칠하지 말고 고유의 천 색을 살려보자. 이 위에 그냥 한 번 그려보자” 했지요. 해보니 좋더라고요. 그렇게 색도 조금씩 넣고 했지요. 


-오래된 작업인데도 참 현대적이랄까. 세련된 느낌이 들어요. 왜일까요?

요즘에 와서야 사람들이 많이 찾아요. 당시만 해도 좀 기계적이고 차갑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그때는 인기가 없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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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초기 작품을 잘 관리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더라고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부끄럽거나 아쉬운 부분만 보인다고도 하고요.

저는 초기 작품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가들의 초기 작품은 상당히 높이 평가받을 수 있어요. 그 나름대로 한 작가의 세계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니까요. 



-작가의 삶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일일텐데요.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요? 

실험정신이 강해야 해요.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를 자꾸 찾아야 하고요. 그러려면 실험을 해서 찾아내야지 그냥 나오는 건 없거든요. 작가의 작품이 바뀌는 데에는 계기가 있고, 실험을 통해서 방향을 잡아갈 수 있지요.

파리에서 한국 단색화전을 열었던 미술관 관장이 제 작품을 본 적이 있어요. 작품을 둘러보더니 “변화가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라고 말하더군요. 그야 당연하지요. 저는 작은 계기를 숱한 방법으로 실험했어요. 그 실험들이 이어져 자연스러운 변화로 보이는 것테고요.



-김태호가 만난 계기들이 궁금한데요? 

한지로 작업한 이야기부터 해볼까요?(웃음) 한국 한지 장인을 만났을 때 일이에요. “내가 만든 한지의 물성을 활용해서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하더라고요. 우선 그냥 한지를 사다가 실험을 시작했죠. 한지와 내 작업의 형상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하면서요. 한지를 찢어보니 섬유질이 나오는 것도 보고, 종이의 성격을 여러모로 파악했습니다. 초기 한지 작업은 별별 다양한 게 많아요. 워낙 실험을 많이 했거든요.

그렇게 열심히 한지로 작업을 하다가, 또다시 캔버스로 돌아온 계기도 있었습니다. 한지의 한계, 특히 작은 스케일 때문이었죠.

한지는 한 장, 한 장 종이를 떠서 만들잖아요. 미술관 전시하기에는 한지의 스케일이 작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캔버스로 돌아가야겠다 생각했어요. 캔버스에 한지를 붙이는 방식을 시도해보기로 했죠.

한지를 이어 붙이고, 이어진 자국을 지우기 위해서 물감을 칠했어요. 한지로 만든 형상에 물감으로 덧칠했으니, 한지는 표면 아래에 파묻혀 버렸죠. 

중간중간 물감만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물감이 두둑 두둑 쌓인 게 꼭 군더더기만 잔뜩인 양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라인더로 단면을 싹 갈아봤지요. 세상에, 그림이 시커메지는 거예요. (웃음) 그라인더로 가니까 열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도구를 바꿨죠. 면도 칼을 가지고 살짝살짝 물감을 벗겨냈어요. 작업을 할수록 밑에 깔린 색깔이 보이는데 너무 고운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아! 깎는 방식으로 가자’ 했죠.

(최근 작업은) 물감을 쌓은 뒤에, 다시 칼로 긁어낸 거예요. 다 긁어내고 나면 그냥 밑바탕과 같아 보이지요. 하지만 칠하지 않은 것과는 분명 달라요. 이 위에 많은 색으로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고 했던... 그 잔재, 잔상, 형상 같은 것들이 남아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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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만으로 보면 큰 변화를 발견하기 어렵다해도

작가라면 끊임없이 크고 작은 실험을 거듭해야한다고 말하는 작가.

지치지 않는 배경이 궁금해졌다.

-자신의 스타일이 생기면 그것만 꾸준히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은 계속 새로운 실험을 하고 변화를 주는 점이 인상 깊어요. 이유가 있을까요?

그림은 임자가 따로 있거든요. 그림은 내가 그리지만 주인은 따로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취향에 따라서 A를, 또 누군가는 B를 좋아하기도 해요.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취향이. 저는 그저 작가로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에 집중할 뿐이죠. 


-김태호의 대표작, 단색화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캔버스 위에 물감을 가로, 세로로 선을 그으면서 수십 겹을 쌓아올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물감 색만 해도 22가지를 사용하고요. 

반복적으로 선을 계속 긋다 보면요. 겹쳐지는 물감이 굳으면서 자연스럽게 층이 생기고, 그 사이에 공간이 생깁니다. 곳곳에 보이는 구멍도 공기가 자연스럽게 만든 모양이지요. 그래서 이런 느낌으로 다시 제작을 하려고 해도 그대로 되지 않아요. 

십수 겹으로 층이 생긴 위에 칼로 하나하나 깎아 냅니다. 깎아내면 색의 단층이 보이지요. 그래서 제 그림은 멀리서 봤을 때는 단색이지만, 자세히 보면 색이 무궁무진합니다. 없는 색이 없어요. 

그런데 화집이나 사진으로는 그 세밀한 색이 표현되지는 않더라고요. 실물로 보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가 없어요. 이 느낌을.


-모노크롬이 한 가지 색으로 그린 그림을 말하잖아요. 단색화도 단어 그대로 의미는 그렇고요. 그렇지만 미술계에서 말하는 한국작가들의 단색화는 좀 다른 의미로 알고 있어요. 작가님께서 알려주시겠어요?

우리의 ‘단색화’라는 건 단순히 하나의 색으로 그린 그림, 하나의 색이 담긴 그림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해요. 흔히 미국에서 말하는 모노크롬과는 다르고요.

단색화는 한 행위의 반복, 무목적성, 목적 없이 도를 닦는 ‘수양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도를 닦듯이 아침부터 하루 종일 치고 또 친 결과물. 그걸 보통 우리의 ‘단색화’라고 그래요.


-최근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단색화 작품들을 소장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단색화가 세계 미술시장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요?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현대미술 작가들, 단색화 작가들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간명해요. 어디서 본 적 없는 새로움 때문이죠.

단색화하면 떠오르는 박서보 선생, 하종현 선생, 정상화 선생… 전부 다 자기만의 독특한 기법을 개발하신 분들입니다. 저도 그 결을 따라 저만의 독특한 기법을 개발했고요. 외국에서 이렇게 하는 사람 어디를 찾아봐도 없거든요.

제가 볼 때 그림은 많은 실험을 통해서 자기 것을 찾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다른 누가 찾아줄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작가들은, 자기가 노력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게 뭔가를 찾아가는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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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을 여러 번 쌓아 올린 뒤 그 질감과 두께를 통해 작업하는 김태호의 단색화.

그만큼 그의 작업실에는 물감이 엄청나게 많다.

50년 이상 동고동락한 의자에도 두터운 물감이 턱턱 얹어져 있다.



-홈페이지부터 이 작업실까지. 본인의 아카이브를 정말 잘 만들고 계신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오늘 수장고도 보여주실 수 있나요? 작품 관리를 어떻게 하고 계신 지 궁금해요.

저는 대부분 작품을 이렇게 종이 박스에 담아 보관해요. 종이 박스에 담아서,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하죠. 따로 온도와 습도를 맞춰 관리하는 공간도 있고요.

작품 관리 방법보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라고 봐요. 항상 큰 전시를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새 전시를 위해서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해요. 작업이란 건, 그냥 꾸준히 하면서 쌓아놓는 것이죠. 전시 계획이 생기면, 그동안의 작업 중에서 골라 전시하고 그래야죠! 

젊은 작가들 중에 전시 있을 때만 작업을 하고 그 외엔 안 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까워요. 또, 본인이 재주 좀 있다 싶으면 ‘금방 하니까 좀 놀다가 하자’하는 경우도 많이 보는데, 그럼 안돼요. 사람은, 작가는, 항상 매일 일을 하는 습관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역시 성공에 이르는 길에 성실함을 빼놓을 수 없네요. 작가님께도 기억에 남는 스승의 말이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듣고 싶어요. 

옛날에 박서보 선생이 나한테 좋은 이야기를 했어요.

“나는 삽화나 만화 이런 거 그리는 재주는 없다. 그거 있었으면 배고플 때, 그 일을 했겠지. 그러다 보면 삽화가나 만화가가 되어서 다른 길로 갔을 거야”라는 이야기였죠. 오히려 유별난 재주가 없기 때문에, 우직하게 그림만 그리게 됐다는 이야기. 그게 참 울림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성공한 작가들은 특별한 손재주가 있다기보다는 그런 체질이 아닐까 싶어요. 작가로서의 체질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성공하지 않았을까. 종종 이 이야기를 떠올리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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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작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주요개인전

2020 Pearl Lam Galleries (홍콩)

2019 대구아트페어 (대구)

2018 개인전 LA ART FAIR (LA 컨벤션센터, 미국)

             애슐린 갤러리 (서울)

             Metaphysical Art 갤러리 (대만)

2017 개인전 LA ART FAIR (LA 컨벤션센터, 미국)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 (제주도)

            Mizuma 갤러리 (싱가포르)

2016 KIAF 노화랑 (COEX 서울)

2015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14 노화랑 (서울)

            슈페리어 갤러리 (서울)

2012 ESIA 갤러리 (대구)

      KIAF 노화랑 (COEX ,서울)

2010 KIAF 노화랑 (COEX, 서울)

2008 Art Drome 갤러리 (독일)

2007 성곡미술관 (서울)

            백해영 갤러리 (서울)

            노화랑 (서울)

2006 노화랑 (서울)

2004 부일미술관 (부산)

2002 동경화랑 (동경, 일본)

2001 노화랑 (서울)

1999 Andrew-Shire 갤러리 (L.A/미국)

1997 조현화랑 (부산)

1996 가마쿠라화랑 (동경/일본)

1995 원화랑 (서울)

1994 박영덕화랑 (서울)

1991 현대화랑 (서울)

1986 현대화랑 (서울)

1985 현대화랑 (서울)

1984 무라마츠화랑, (동경, 일본)

            미술회관, (서울)


수 상

2003 제2회 부일 미술 대상 수상

1995 ORIGIN 미술상 수상

1986 동아판화비엔날레 BIENNALE전 대상 수상

1984 제3회 미술기자상 수상

1982 공간판화대상전 대상 수상

1980 제7회 한국미술대상전 최우수 프론티어상 수상

1977 제13회 한국미술협회전 금상 수상

1976 한국미술대상전 특별상 수상

1971 한국판화전 금상(문화공보부장 관상) 수상

1968-1981 국전 22회, 27회, 문화공보부 장관상 수상

                      국전 22회, 23회, 25회, 27회, 30회 특선

                      국전 17회, 20회, 21회, 24회, 26회, 28회, 29회, 입선

1968 7회 신인 예술상 장려상 수상